“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오늘의 말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 22:1-2)

삶에 분리의 경험은 다반사입니다. 익숙한 일과 장소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 있던 사람과 헤어져 사는 때도 있습니다. 경우마다 다르지만 대개 분리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가끔 분리의 고통이 끔찍한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가 그럴겁니다. 또다른 끔찍한 분리도 있습니다. 바로 무언가에 의해 버림받을 때입니다. 그것도 사랑하는 것에게 버림받는 것은 끔찍한 고통입니다. 수십년 충성을 바친 직장에서 어느날 해고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을 함께 하던 배우자나 자녀에게 배신당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만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버림받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이런 경험의 일부만으로도 우리는 끔찍해질겁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느낌만큼 처참한 경우가 어디있을까요? 특히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같은 느낌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경험한 끔찍한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탄원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내가 밤낮 부르짖어도 전혀 응답하지 않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런 확신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신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경험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아들의 고통입니다. 아무 죄가 없으시면서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 죽음의 고통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자체로 저주의 죽음입니다. 그리스도가 죽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집니다.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실 때 이것은 버림받는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가 당한 육체적인 고통도 상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그 고통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습니까? 하나님, 그리스도의 버림받는 고통을 알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받아야 했던 그 저주의 죽음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 고통에 담긴 사랑을 알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성경읽기 시 74-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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