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2024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그들의 손에 사악함이 있고 그들의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시 26:9-10)
단체기합이란 것이 있습니다. 옛날 학창시절이나 군대시절의 한 추억거리입니다. 형제 많은 가정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두 사람이 잘못해도 전체가 벌을 받는 것입니다. 한두 사람의 잘못도 공동책임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는 따끔한 교육방식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잘못을 미리 일깨워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무 잘못이 없어도 큰 불평없이 기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합이 아니라 형벌이면 어떻게됩니까? 형벌의 경우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죄지은 사람과 죄없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이 취급됩니까? 죄도 경중에 따라 구분해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는 사회가 공의로운 사회입니다. 아무 죄없이 죄인들과 함께 정죄받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갑갑하고 억울하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가 곳곳에서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가끔 오랜 세월의 호소와 투쟁 끝에 누명을 벗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 다윗은 또다른 차원에서 주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과 함께 거두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자신은 죄인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그가 흔들림없이 주님을 의지한 것은 주님이 아시는 바입니다. 또한 그는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미워했습니다. 대신에 성소에서 주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사랑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그는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정죄받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겁니다. 그는 주님께 호소합니다.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여기서 "거둔다"는 말은 "버리기 위해 쓸어 모으는 것"입니다. 마치 쓰레기를 모아서 버리는 것같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죄인들이 어느날 순식간에 심판받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에 자신의 운명도 주님 손에 달려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주님의 공의도 믿고 있었습니다. 그 공의에 비추어볼 때 주님은 자신을 죄인들과 함께 심판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심판받지 않을 유일한 근거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인으로 믿고 있습니까?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를 심판에서 자유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의 용서받은 자녀답게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성경읽기 사 60-63장>